일본의 메뉴얼 사랑
일본에 살다보면 답답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일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을 하다보면 한국에서는 그냥 스무스하게 넘어갔을 것 같은데 일본에서는 더 깊게 파고드는 경우도 있고, 쓸데없이 자세하게 확인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꼼꼼하게 본다는 것은 그만큼 제품의 품질이 올라간다는 일이니 장단점이 있는 것이지만 가끔 과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들은 왜 그러는가? 그런 생각을 쭉 하다가 일본에서 IT의 발전이 느리다는 점, 기계가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사람이 하고 있는 점을 보고 있자니 드는 감상이 있었다.
이 나라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프로그램을 대신하는 나라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이 감상을 뚜렷하게 전달할 자신이 없기에 다소 힘들겠지만 한번 들어보라. 내가 생각했던 방식은 거꾸로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IT의 발전이 느리단다. 물론 일본에서는 IT가 3D직종으로 취급되어 그만큼 인재들이 들어오지 않아서 발전이 더딘 것도 있다. 그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21세기에 IT업계는 누구나 인정하는 대체불가능한 시장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 업종을 3D인채로 두는 것일까?
그러면 반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어쩌면 일본에서는 IT의 필요성을 제대로 못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던 중에 일본 사람들이 코로나 시국에 재택근무를 할 때 도장을 찍으러 회사에 출근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보았다. 처음에는 진짜로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겼는데,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생각해보니 그건 결국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결제가 된다는 문화와 메뉴얼때문이 아닌가.
메뉴얼. 일본 사람들은 메뉴얼을 참 좋아한다. 무언가 하려고 해도 '그건 규정에 없어서...' 라던가 '그건 메뉴얼에 없어서...' 같은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리고 그만큼 메뉴얼을 자세하게 만드려 노력하고 그것을 체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가끔 이게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냥 메뉴얼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만큼 사람이 완벽하게 메뉴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로 버그의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을 못믿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믿음이 부족하다면 프로그램이나 클라우드 상에 중요한 자료를 두는 것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IT의 중요도를 비교적 낮게 보게 되고 그러면 발전이 더뎌지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사람이 프로그램이 해야되는 역할을 너무 완벽히 수행하고 있는 탓에 굳이 IT로 넘어가야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이다.
첨언
위의 감상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다. 일본의 IT가 발전하지 않았던 중요한 요인을 찾는다면 인구 고령화로 인해 돈을 제일 많이 쥐고 있는 고령층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더이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지 않게 된다. 이건 누군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패턴이다. 문제는 한창 돈을 써줘야하는 고령층이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타겟으로 사업을 할 때 새로운 IT기술 등보다는 기존에 있던 것들, 사람이 직접 하는 기술들이 더 잘 먹힌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당장 돈을 벌어야하는 기업 입장에서 IT보다는 다른 곳에 주력할 수 밖에 없어지고 그만큼 IT는 퇴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한국의 TV 예능 프로그램들이 젊은 사람들 보다 나이 든 사람들을 주 타겟층으로 보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위의 원인은 일본에 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추측이 아닌가. 그래서 그런 것보다는 내가 직접 일본에 살게 되면서 느꼈던 감상을 이야기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내 이야기야말로 하나의 우스갯소리로 그칠 수도 있다. 그러니 그저 재미로만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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