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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쟁이의 책 서평

살고 싶다는 농담 - 삶의 고민들에 대한 고찰이 담긴 에세이

더이상 뜨겁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허지웅 작가님의

불행, 죽음, 믿음 등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 최근에 '악성림프종'이라는 일종의 혈액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시다 마침내 견뎌내시고 일어난 허지웅 작가님의 신작입니다. 허지웅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평소 방송에서 드러내신 모습들에 흥미가 생겨 유투브에서 검색하다가 꾸준히 진행하고 계신 고민 상담 코너를 보다보니 출간하신 책도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부터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좋은 문장들이 많았고 에세이인 만큼 허지웅 작가님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듬뿍 들어있는 책이어서 밑줄을 많이도 치면서 읽었습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는 모순과도 같은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번에 겪으신 투병 생활에서 느낀 부분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에세이 중간에 그 경험에서 죽음을 느꼈던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적으신 부분이 있는데, 읽으면서 저에게 죽음이 다가오면 어떻게 느껴질지 생각해보게 될 정도로 생생한 표현이었습니다.

 

 

 

 

 

이겨본 사람만이 다시 이길 수 있고, 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요컨대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자는 것이다.
- 살고 싶다는 농담, 소제목 '다시 시작한다는 것'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그 안에 이미 전에 실패했었다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실패가 처참하면 처참할수록 다시 일어나기는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다시 열심히 공부하며 스펙을 쌓고 좋은 직장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버티기 위해 또 열심히 노력합니다. 어쩌면 지금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삶은 일직선 레일에서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람이 언제나 성공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실패를 하기 마련입니다. 항상 성공만 하는 사람은 아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초인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실패했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 입니다. 그 정도에 따라 누군가는 쉽게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일어나기 힘든 상처를 입었을 수 있습니다.

 

  허지웅 작가님은 후자에 속할 스스로 형편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몸을 이기는 경험을 쌓아나가자고 말합니다. 자기 몸을 이기는 경험은 경쟁자가 오로지 자신뿐이니 순수히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이겨본 경험이 다시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 줍니다. 요컨대 기본이 되는 경험을 자신의 노력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경험으로 쌓아버리는 것입니다.

 

 

 

 

너무 믿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그럴싸한 말장난이다. 그걸 대체 연애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지난 몇 년간의 연애가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완벽한 실패였다.
- 살고 싶다는 농담, 소제목 '믿지 않고, 기대하지 않던 나의 셈은 틀렸다'

  이 부분은 제가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던 부분입니다. 저는 사람을 믿는 것이 조금 서툽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자연스레 거리를 둔 적이 많습니다. 어쩌면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이런 성격을 불러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지웅 작가님은 이런 부분에서 저와 닮았었나 봅니다. 누군가를 믿더라도 완전히 믿지 않고, 무언가를 원해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태도는 어떻게 보면 타인에게 배신당하지 않는 최고의 태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고독감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믿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 안정감을 얻고 기대하기 때문에 보답받았을 때 크게 기뻐합니다. 저는 아직 연애를 해보지 못했지만 아마 연애에서는 특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허지웅 작가님은 타인과의 거리를 '나의 보호막과 너의 보호막의 두께를 더한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 마음을 지키기 위한 보호막의 거리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보호막의 거리를 더한 것이죠. 문제는 그 거리감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 매번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상당히 피곤하기 때문에 관계 초기에는 꾸준히 할 수 있어도 익숙해지면 그 빈도가 점점 느슨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그 계산이 맞지 않을 때마다 충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하지만 그런 삶은 매우 피곤해 보입니다. 타인과 잘 지내는 일은 이리도 어려운 일이군요.

 

 

 

 

다만 가면을 쓴 채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다가는 미칠지도 모른다.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도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런 친구는 많을 필요가 없다.
- 살고 싶다는 농담, 소제목 '가면을 벗어야 하냐는 질문'

  이 파트는 사람을 대하는 데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고 느낀 어느 청년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하는 자신이 가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면을 벗은 삶을 살아야 할까요?' 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얇던 두껍던 가면을 쓰고 다닙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써야할 여러 개의 가면을 구비해두고 말이죠. 그리고 그 능력은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필수적인 능력입니다. 특히 요즘 같이 만나는 사람이 많은 현대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자신의 민낯을 드러나고 생활하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큰 행위입니다. 가끔 가면을 벗고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저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가면을 벗겨내려는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네요.

 

  하지만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면 자칫 원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힘들어 집니다. 우리는 가끔 무거운 가면을 벗어내리고 교류하면서 자신을 되찾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허지웅 작가님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도 좋은 친구들을 만들라고 조언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보통 우리의 어릴 적을 같이 지내고 꾸준히 연락하고 지낸 학창시절 친구들이 비교적 가면을 벗고 대화하기 쉽게 느껴집니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으니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그런 친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많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변에 그런 친구들밖에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애초에 그 친구 몇명밖에 없거나 진정으로 가면을 내릴 수 있는 친구들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진짜로 이런 분이 계신다면 그 분은 정말 축복받았다고 생각되네요.

 

 

 

 


  오늘은 허지웅 작가님의 '살고 싶다는 농담'를 리뷰 해보았습니다. 더 적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순백의 피해자는 없다', '불행을 동기로 바꾼다는 것', '바꿀 수 있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평정',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등등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법한 주제들에 대해 작가님 나름의 해석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겨서 행복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읽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이미 읽어보신 분들은 훗날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다른 느낌을 받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